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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덕수궁의 모든 것

hazle ray 2023. 2. 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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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eoksugung.go.kr/

 

문화재청 덕수궁

덕수궁, 대한제국과 고종·석조전 소개하는 온라인 교육(총3차) 진행

www.deoksugung.go.kr

(덕수궁관리소 사이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경복궁에 이어 덕수궁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덕수궁은 저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덕수궁 돌담길이 그렇게 로맨틱하다면서요~?

로맨틱한 덕수궁 돌담길은 어마어마한 미신도 있다고 해요.

예전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가정법원이 있어서 이혼하러 지나가는 부부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같이 갈으면 헤어진다는 어마어마한 미신이 있더라고요.

 

 

먼저 덕수궁은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래요.

덕수는 '덕이 높고 오래 산다'라는 뜻이랍니다.

본래 이름은 경운궁으로, 아관파천 이후 환궁하여 법궁으로 사용되다가 순종 즉위 후 궁의 이름을 현재 덕수궁으로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서울에 위치한 덕수궁 또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축소되었다고 하네요.

 

 

덕수궁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덕수궁의 역사에 대해 퍼왔습니다.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정릉동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이후 덕수궁이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 또한 바뀌게 되었습니다.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살해당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고종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세자와 함께 몰래 빠져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벌입니다. 실제로 1981년 발굴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공사관의 종탑 밑에는 밀실과 비밀통로가 마련되어 있었고, 이것은 덕수궁까지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덕수궁의 구조 및 서양식 건물

 

덕수궁은 경운궁 -> 법궁으로 자리 잡았고 그 이후에 1904년 화재,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의 일이 많았었죠.

덕수궁에도 공문이 있는데 정문은 인화문이었으나 1906년에 대한문을 정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궁궐의 동서남북으로 여러 개의 문이 있었는데요.

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대한문 - 덕수궁의 정문이며, 1904년 화재 이후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동쪽의 대안문을 동년 4월 25일 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치고 궁의 정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시청 앞 광장 쪽으로 동향하고 있는 현재의 대한문은 잦은 도로 확장 등으로 위치가 수차례 옮겨졌어요.

원래 위치는 지금의 태평로 중앙성 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인화문 -  본래 덕수궁의 정문이었고, 덕수궁 궁역이 남쪽으로 확정되고 중화전과 중화문을 건립하는 자리에 인화문이 자리하고 있어 1902년 철거됩니다.

인화문의 현판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덕수궁에는 서양식 건물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우리나라 궁궐 안에 서양식 건물이라니 특이합니다.

한번 살펴보면 석조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중명전, 독던전이 있는데요.

석조전은 대한제국기 동안에 지어진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건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덕수궁 분관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이왕가미술관으로 쓰였던 자리로, 197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정식 개관하였다고 합니다.

개관당시 이전에도 사용되어 오던 덕수궁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오면서 덕수궁관으로 개명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합니다.

중명전은 덕수궁에 딸린 서양식 전각이며, 원래의 이름은 수옥헌이었으나 1904년 경운궁 (현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중명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조선부터 이어 일제강점기, 광복, 현대사를 배우다 보면 아주 오래전 역사가 아니라서

마음이 너무 이상합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고 오랜 식민지 생활의 모습이 현재 저한테도 분노의 감정으로 남아져 있는데

여러모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너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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